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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행복공장, 오늘도 불량품 없는 행복 생산 중! - 미즈내일 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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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남현동 주택가의 작은 건물.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사단법인 행복공장 / 억압 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 해(解)' 라는 소박한 간판. 좁은 복도에 작은 사무실이 하나, 낮은 탁자가 있는 10평 남짓한 공간이 삶의 뿌리 뽑힌 사람들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행복공장이다.

서울대 법학과 졸업, 검사 출신 로펌 변호사와 명문 여대 영문학과, 연극학 박사 출신의 연출가 부부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가진 이들의 공간이라고 하기엔 초라하게 느껴진다. 고백하자면 넓은 창과 소파가 있고, 커다란 회의 탁자와 고급 책상이 놓인 널찍한 공간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노지향(49) 대표가 손수 내린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그들이 만들어가는 '행복 이야기'을 듣다 보니 리포터의 고정관념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남편 - 로펌 변호사가 공장장?

행복공장 권용석(48)대표의 명함이 재미있다. 한쪽 면은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변호사, 다른 면은 행복공장 대표로서 그의 이름이 찍혀 있다. 그는 행복공장 쪽을 앞으로 해서 명함을 건네주었다.

'프리즌스테이'라는 성찰 프로그램과 나눔 사업을 하는 행복공장은 검사 시절부터 그가 꾸던 꿈이다. 그는 1995년 인천지검 특수부 검사 재직 시 파견 형사, 수사관, 기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결식아동을 위한 모임 '사람 사랑' 을 만들었고, 최근까지도 그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1997년 제주지검 재직 당시에는 소년원, 보육원 등의 아이들을 위해 '푸른회'를 만들어 보육원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 소년원 아이들은 범죄의 질도 나쁘고, 재범 확률도 높단다. 하지만 아이들의 범죄가 결손가정 등 나쁜 환경으로 인한 것들이 많아, 그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그는 재소자뿐만 아니라 탈북자나 이민자 등 사회에서 뿌리내리기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었고, 언젠가는 그들을 위한 일들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이것이 작게는 범죄 예방, 크게는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더 다양해지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그는 "권력이든, 재물이든, 명예든 무엇인가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남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피해자가 생기고, 범죄가 생기면 그것이 나 자신이나 가족, 이웃들에게 돌아오는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마음이지요. 하지만 이기적인 마음으로라도 나누고 베풀며 살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거든요."

이런 마음이 행복공장을 꿈꾸게 했고, 오래 걸렸지만 시작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행복공장은 2009년 6월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에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고, 2010년 2월부터 캄보디아 사업과 재소자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 집안의 가장인 그가 이런 일을 하기까지는 연극을 하는 아내의 생각과 도움이 큰 바탕이 되었다.

 

아내 - 연극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극단 해(解)를 이끄는 노지향 대표는 행복공장의 상임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학부에서는 영문학을, 대학원에서는 희곡을 전공했다.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았다. 당시 연극은 번역극이 많았는데, 공감도 안 되고 자기들만의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우연히 극단 '연우무대'의 공연을 보고 사회와 연관이 되는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연우무대의 문을 두드렸고, 연기에서 연출까지 연극에 몰두했다. 연극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연극학과 박사과정까지 마쳤을 정도다. 그럼에도 뭔가 구체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고.

 

"그즈음에 '억압 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한 브라질 연극 이론가 아우구스토 보알을 알게 되었죠. 연극도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예술만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이 아니라, 직접 관객과 소통하고 현실에 뛰어들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었습니다."

 

1997년 결성된 이래 특히 국내에선 처음으로 '플레이백 시어터' 공연을 도입해 소년원, 노숙자, 가출 청소년, 탈북자 등 억압 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교육 연극과 치유 연극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연극에는 마음을 무장해제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재소자나 탈북자, 소년원 아이들이 연극을 통해 마음을 열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그래서 그의 극단 해의 또 다른 이름은 '억압 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 이다.

 

가족 - "제가 알아서 잘 살게요"라 말하는 아들

부부에게는 군 복무 중인 외아들이 있다. '잘나가는'부모를 뒀으니 바라는 것도 많았을 법하다. 요즘엔 부모 재산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아이들도 많다지 않은가.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단다.

"엄마, 아빠 하고 싶은 일 하세요. 저는 제가 알아서 잘 살게요."

 

어릴 때 부터 엄마 아빠의 삶을 보아온 아들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을 친구들과 나눌 줄 아는 착한 심성을 가졌다. 검사나 판사가 변호사로 개업하면 첫해 차가 바뀌고,  그 다음 해는 집이 바뀌며, 그 다음부터는 통장 잔고의 단위가 달라진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다. 1992년 부터 1999년까지 검사 생활, 2002년 변호사를 시작한 그는 어땠을까?

 

지금 부부의 집은 관악구의 서른두 평 아파트다. 권용석 대표는 아이의 교육 여건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할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2002년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고, 1~2년 동안 번 것만으로도 강남의 넓은 T아파트를 살 수 있었어요. 그 아파트를 샀다면 엄청난 이득을 봤을 거예요. 지금은 가진 것 다 모아도 그 아파트 못 사요.(웃음)"

 

그때 그의 마음을 잡아준 것이 아내 노지향 대표다. 산술적으로야 엄청난 손해지만 지금은 아내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아이가 건강한 심성으로 자랄 수 있었고, 아내와 같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노지향 대표는 "그때 마음을 접어준 남편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이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바람도 있었을 텐데, 내 말만 들어준 것이 아니라 마음도 같이 움직여주었으니까요"라며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드러낸다.

 

이해하기와 만나기 - 프리즌스테이

노지향 대표는 지난해 12월 영등포 교도소의 재소자들과 2010년 3월부터 함께 해온 참여 연극 <행복샵 #>공연을 마쳤다. 행복공장의 후원으로 진행된 행사다.

"어느 날 갑자기 생면부지인 사람들이 만나 아주 천천히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받은 사랑을 나누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수형 생활 중 가장 큰 추억이 생겼습니다. 고맙습니다."

재소자들이 남긴 소감문 중의 일부다. 글들을 보니 비록 몸은 갇혔어도 진심이라는 열쇠만 있다면 활짝 열릴 수 있는 마음의 문을 가진 것을 알겠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을 터. 권용석,노지향 대표는 이런 재소자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프리즌스테이를 기획하고 지난해 12월 시범 운영을 마쳤다. 올해 본격적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프리즌스테이는 신체검사, 수의착용등 교도소와 똑같은 입감 절차를 거쳐 교도소와 거의 유사한 곳에서 일정 기간 자발적인 수감 생활을 한다. 이런 체험을 통해 갇힌 자들의 생활과 마음을 경험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을 만나는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고 한다.

 

부부 - 걸어가기

틈만 나면 서로 칭찬하고, 인터뷰 내내 눈만 마주쳐도 웃는 결혼 23년 차의 이 부부. 이들을 기찻길 부부라 부르기로 했다. 기찻길은 영원히 평행이어서 서로 만날 수 없는 것들의 상징이다. 하지만 믿음과 사랑이라는 침목으로 이어진 그들 부부의 길은 견고하고 곧아 보였다.

그들을 만난 후 '사랑이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것' 이라는 진부한 말이 생명을 얻었다. 행복은 그러한 사랑 가운데서 맺어지는 열매일 테니 말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행복에는 이런 제품 설명서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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