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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레이디경향] 성찰과 나눔으로 행복한 세상 꿈꾸는 '행복공장' 권용석·노지향 부부

 

때로는 세상이 마치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기준과 조건들, 사람들 간의 관계 그리고 사회의 구조와 체제. 이 모든 것이 무거운 족쇄가 되어 내 삶을 옭아매고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은 심정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몸과 자유는 속박당하더라도 마음만은 편할 수 있는 진짜 감옥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죄를 짓지 않고도 스스로 '감옥행'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감옥이 문을 열었다. 팍팍한 일상에 심신이 지친 기자가 직접 입소해 성찰의 시간을 가져봤다.

스스로 독방에 갇혀 마음의 주름을 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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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6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에 문을 연 '내 안의 감옥'. 감옥의 형태를 본뜬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명상 수련원으로, 앞으로 매달 신청을 통해 각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모집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을 위한 '쉼터'이자 바쁜 일상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사색의 장소이기도 하다.

처음 보도를 봤을 때는 좀 황당했다. 사실 대충 적혀 있는 단어만 보고는 사설 교도소가 생긴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매우 흥미로운 곳이었다. 자유를 구속당하고 세상과 단절되지만, 대신 자신의 내면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감옥의 역설'을 활용하고자 하는 '내 안의 감옥'.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만날 수 있을지, 기자가 직접 체험을 하러 나섰다.

우선 높은 벽도, 철조망도 없다. 쇠창살도, 그 틈 너머로 감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2,550여 평 규모의 대지에는 수감동, 관리동, 강당 및 식당동 등 3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입소자가 주로 머무는 곳은 수감동의 2층과 3층. 층마다 독방 32개가 가운데 계단을 중심으로 ㄷ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각 방에는 화장실과 세면대가 마련돼 있고, 문에는 실제 감옥처럼 감시창과 밖에서 잠그는 자물쇠가 달렸다. 식사는 다른 건물인 식당에서 먹지만, 문마다 배식구도 만들어져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감옥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솔직히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비교하기는 힘들다. 다만, 일반 참가자들이 거부감을 가질까 염려돼 쇠창살을 없앴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편안하고 현대적인 느낌이다.

비교적 큰 창으로 우거진 나무가 보이는 방 하나를 골라 짐을 풀고 앉았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마라더니 시원하게도 퍼붓는다. 오히려 잘됐다 싶다. 혼자서 바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화창한 날씨보다 비 내리는 날이 운치도 있고 좋을 듯했다. 1.5평, 이 비좁은 독방에 계속 갇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간이 꽤 많이 흘렀겠다 싶어 시계를 보니 고작 30분이 지났을 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대부분 이곳에 온 사람들이 겪는 과정일 것. 개인의 자율을 최대한 존중하는 '내 안의 감옥'은 교도소 체험 프로그램과는 달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고독을 견디지 못해 힘들어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사실 자율 명상의 시작은 자기 안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몸을 가둔 대신, 정신에게 자유를 허락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수 있고, 일상의 반복된 관성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고하고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듯했다.

문득 통혁당 사건으로 20년간 옥살이를 한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감옥 생활을 통해 지니게 된 습관 중 하나가 동일한 문제를 거듭 생각하는 버릇입니다. 면벽이나 불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저 돌이켜보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저는 이러한 것에 의해 일련의 새로운 판단을 가지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계속해서 '뭐라도 해야 할 텐데'라는 생각에 불안하고 언짢던 마음이 점차 조금씩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의 인상이 풀리듯, 마음의 주름이 펴지는 기분이랄까. 온몸이 노곤해지면서 살포시 잠이 들것도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 시간에 무슨 잠을!'이라며 억지로 눈을 부라렸겠지만 뭐 어떤가, 당장 나가야 할 곳도 없는데. 참, 나 나가지도 못하지?

1990년대 후반, 제주지검 공안·기획 담당 검사로 일하던 권용석(51) 변호사는 1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격무와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고, 겨우 잠자리에 들어도 출혈 위궤양으로 밤새도록 복통에 시달려야 했다. 어떤 날은 '그냥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내 인생은 대체 뭔가' 하는 허무함이 밀려왔고, '나 자신과의 관계도 끊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스스로를 통제할 힘마저 잃어갔다. 자신이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앞으로 나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돌진하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오롯이 내면을 들여다보고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해졌다. 오죽하면 교도소 독방에 며칠만 갇혀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방법을 알아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몸도 정신도 피폐하게 만드는 세상의 여러 가지 속박에서 벗어나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감옥'을 생각하게 된 것이. 이후 법무법인 변호사로 자리를 옮겨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일들을 조금씩 머리로 옮겨 구상해보고, 또다시 하나씩 현실로 꺼내보기 시작했다. 검사 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사회에 대한 의문과 답답함에 대해서도 놓지 않았다. 소년범, 결식아동,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공감에서부터 범죄와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데 힘을 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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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이런 모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스스로 그리고 이웃과 사회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한 일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2009년 극단 '해'의 대표인 아내 노지향씨(53)와 함께 만든 사단법인 '행복공장'이다. 성찰과 나눔을 통해 행복의 삶을 모색하고자 하는 비영리단체다. 두 사람이 각각 이사장과 상임이사를 맡아 앞으로 힘차게 행복을 만들어낼 것을 다짐했다. 그 주요 활동 중 하나가 바로 홍천에 문을 연 자기 성찰 공간 '내 안의 감옥'이다.

일단 감옥이라는 컨셉트 자체가 무척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특별히 감옥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20여 년 전 제가 정말 힘들었던 시절, 교도소에 갇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단 며칠만이라도 모든 것에서 벗어나 조용히 혼자 있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재충전이랄까, 자기 돌아봄이랄까 그런 맥락이죠.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 시대 사람들은 일단 너무나 많이 지쳐 있어요. 그리고 지나치게 바깥을 향해 있고요. 자기 안을 살피는 힘이 저부터도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저 같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봐요. 사회도 과열된 경쟁 속에서 그냥 휩쓸려 떠내려가는 기분이에요. 그 물살에서 한번쯤 빠져나와서 쉬었다 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스스로도 한 번 들여다보고, 주변 이웃도 한 번 생각해보고,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도 돌아보고. 그렇게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만큼 친숙해서 쉽게 떠오른 것 아닐까요?(웃음)


가까운 공간이긴 합니다만, 감옥 안쪽 방 안을 본 적은 별로 없어요. 이번에 '내 안의 감옥'을 만들면서 인테리어 때문에 전체적으로 참고를 좀 한 정도예요. 처음에는 실제 감옥과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볼 생각도 했는데, 이용하는 분들 중에서 너무 위압감이 들어 싫어할 분도 계실 듯하다고 해서 나중에 많이 수정했어요. 제가 감옥을 제대로 가본 건 검사 시절 인권침해 여부 조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 정도였어요. 물론 검사 생활하고 변호사 활동도 주로 형사 파트를 맡다 보니 늘 경찰서, 구치소, 법원, 검사실, 교도소 등을 자주 다니긴 했어요. 동료들과 "전생에 우리는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저질렀을까"라고 농담도 많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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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이 주는 특별한 효과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전부 물어요. "왜 하필 감옥입니까" 하고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기준으로 해서 그래요. 저는 세상이 감옥 같거든요. 저 역시 돈, 평판, 책임감 뭐 이런 데서 자유롭지 못해요. 그런 것들에 의해 속박당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습관, 예를 들면 담배라든지. 또 내 안의 감정들. 분노, 원망, 집착 같은 것들로부터도 짓눌리고 있죠.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일상의 패턴 혹은 관성에서 벗어났을 때 얼마나 자유롭겠어요. 소중한 가족도 행복의 원천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족쇄일 수도 있죠. 정말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이런 무수히 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거예요. 감옥 안에서는 역설적으로 세상의 속박에서는 벗어나는 거죠. 세상을 가두는 거예요.

실제로 '내 안의 감옥'의 효과를 체감해본 적이 있는지요.

1.5평 독방에 들어가서 문이 잠기고 혼자 딱 앉으면 일단 좀 차분해져요. 한동안은 갇혔다는 실감은 잘 안 날 거예요. 게다가 자발적으로 들어간 거라 더욱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뭔가 편안해지고 근육은 물론 정신이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갇혀 있는데도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어요.

명상을 하고 자신을 찾아간다거나 수양을 한다는 걸 보면 불교의 '템플스테이'나 천주교의 '피정집'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내 안의 감옥'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요?

상당히 자율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점이죠. 개인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자 반대로 가장 위험한 조건이 될 수 있어요.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맡겨놓는 거니까요. 시간과 공간을 본인이 다 통제해야 하거든요. 참여하러 와서 내내 잠만 자고 갈 수도 있고, 생각만 하다 갈 수도 있고, 벽만 보다 갈 수도 있는 거예요. 뭘 하든 자기 나름인 거예요. 다른 비슷한 프로그램은 지도자도 있고 보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극을 주잖아요. 또 참여자들끼리 함께하면서 영향을 주고받고요. 하지만 이곳에선 모든 것을 철저히 본인에게 맡겨요. 저희는 사람은 각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충분히 해답을 찾아갈 수 있다고 봐요.

물론 저희도 황 신부님의 '내 안의 감옥'이나 금강 스님의 '문무관' 같은 프로그램도 있고 또 성찰 연극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최대한 길은 제시하되, 개인이 자신의 세계를 찾아나가길 바라요. 이곳에서만큼은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다시 말하면 많이 갇혀 있으란 표현이 맞겠네요.

한편으로 '내 안의 감옥'은 비종교단체이면서도 종교적인 면을 경험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종교적 색채가 없기 때문에 종교를 아울러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유례없는 매우 독특한 프로그램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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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요즘 사회에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힐링'이나 '치유'라는 말이 넘쳐나고, 굳이 삶을 되돌아보고 쉬어 가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운데요.

최근 들어 무분별하게 명상, 쉼 이런 데 대한 담론이 넘쳐나면서 또 쉽게 질리고 편중되지는 않을지 우려도 있어요. 그래서 저 또한 가급적 '치유'나 '힐링'이란 말은 쓰지 않으려 하고요. 그리고 너무 진지하고 고차원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굳이 심각할 필요 있나요. 유쾌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도 있잖아요. 사실 참회라든지 이런 말하는 것도 좀 조심스러워요. 사람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단어거든요. 저희가 바라는 건 진짜 지나치게 비감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독방에서 편히 쉬다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해요.

두 분이 함께 '내 안의 감옥'을 비롯해 나눔과 성찰을 통한 행복한 일들을 기획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두 사람이 계속해서 꿈꾸는 모습은 어떤 건가요?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단 저부터 편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내가 변화하면 그 에너지로 다시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졌으면 하고요. 나아가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 명 한 명 사람들이 변하고 마음들이 바뀌어서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제가 정말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의 모두가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는 거예요. "행복하세요?" 하고 질문을 하면 "네" 하고 대답하는 사람을 거의 못 봤어요.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요. 그 질문에 자신 있게 "그럼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진짜 좋은 사회가 아닐까요. 저희는 좀 더 많은 분들이 너무 앞만 보고 가지 말고 한번쯤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들여다보면서, 그로 인해 자유롭고 편안해지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요. 그러다보면 세상 전체가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이런 무수히 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거예요. 감옥 안에서는 역설적으로 세상의 속박에서는 벗어나는 거죠. 세상을 가두는 거예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조민정, 안진형(프리랜서)>

 

출처: http://media.daum.net/society/people/newsview?newsid=20130812183707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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