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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겨레 칼럼] <삶의 창> ‘내 안의 감옥’ -호인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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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달고 보니 무슨 심오한 강론의 주제 같다. 6월6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에서 소박한 준공식을 치른 건물에 붙인 조금은 생소한 이름이다. 변호사 권용석, 연극인 노지향 부부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여러 해 전 설립해 운영해온 ‘㈔행복공장’이 혼신의 힘을 쏟아 감옥체험 수양관을 건립했다. 건물의 내부 구조는 쇠창살만 없을 뿐 일반 구치소나 교도소와 거의 같다. 변기가 달린 1.5평짜리 독방들이 복도와 계단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프리즌 스테이’를 위한 공간이다. 거기 들어가 가슴에 번호표가 붙은 수의를 입고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영락없는 수감자다.

 

 

‘행복공장’은 안내 팸플릿에서 ‘내 안의 감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잠시 멈추어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곳. 후회, 원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참회와 명상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곳. 습관적인 삶, 관성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곳.”

 

 

권용석은 검사와 변호사를 거치면서, 노지향은 연극을 통한 수감자들의 내적 치유 프로그램을 주도하면서 감옥 특유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게 동기가 되었나? 그들은 남의 손에 잡혀 들어가서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는 감옥이 아닌, 내 발로 찾아 들어가서 나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새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곳을 꿈꾸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내 안의 감옥’은 그 기능이나 역할로 보면 불교의 템플 스테이나 개신교의 기도원, 천주교의 피정집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프로그램들은 아무래도 종교가 없는 일반인이 접근하기에는 편치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신도’가 아닌 그냥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그들은 여기에 착안한 것 같다.

 

 

그날 준공식 때 나는 맨 먼저 축사를 부탁받았다. 참석자들 가운데 내 나이가 제일 많았나 보다. “‘내 안의 감옥’ 간판을 보고 축하의 마음보다 염려가 앞선다. 보통사람이라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곳이 감옥인데 여기가 바로 감옥이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고 돈을 내야 들어올 수 있다. 여기까지 와서 기꺼이 돈 내고 옥살이를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손님이 없으면 운영이 안 되니 망할지도 모른다. 이게 염려스러운 거다. 아무쪼록 ‘내 안의 감옥’에 종사하는 여러 분들과 이 땅과 이 시설물들이 많은 이들이 세상을 아름답고 바르게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멀리 해남 미황사에서 온 금강 스님이 바로 뒤를 이었다. “여기가 대도시에서 먼 산골짜기라고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사는 미황사는 훨씬 더 멀지만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문제는 거리나 위치가 아니라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다. ‘내 안의 감옥’이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상처투성이의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가 된다면 그들은 이곳을 찾을 것이다.” 나의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매우 희망적인 말씀이었다.

 

 

서울에서 열기로 했던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쪽 대표의 ‘급’을 놓고 기싸움을 하다가 끝내 온 길을 되돌아갔다는 것. 외교문제에서는 ‘급’이 온 겨레의 기대와 희망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어차피 남이나 북이나 최고책임자의 의중에 어긋나거나 반하지는 못할 터, 사신이 차관이면 어떻고 국장이면 어떤가? 안타깝다 못해 화가 치민다. 그들이 판문점 아닌 홍천의 ‘내 안의 감옥’에서 함께 하룻밤을 지새웠다면 어땠을까? (행복공장 www.happitory.org)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918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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