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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겨레 신문] 심신이 지친 당신 감옥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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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오는 4월이면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에 사설 교도소가 문을 연다. 2500평 아담한 터에 수감동, 관리동, 강당 및 식당동 등 건물 세 동이 운동장을 둘러싼 구조다. 수인이 머무는 수감동은 2층인데, 층마다 15명을 수용할 수 있다. 가운데 계단을 중심으로 2평짜리 독방이 ㄷ자형으로 배치돼 수감자의 동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방에는 작은 화장실과 비교적 넓은 창이 달렸고 출입문은 밖에서 잠그는 자물쇠가 달렸다.


교도소 표방한 명상센터
전직 검사인 권용석 소장과
연극인 아내 노지향씨가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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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진행된 감옥명상 파일럿 프로그램이 호응이 좋았다.

얼핏 보면 법무부 외주를 받은 민간 교정시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강제입소가 없다. 죄를 지었든 짓지 않았든 자발적으로 입소한다. 형기는 죄의 종류와 죄질을 묻지 않고 일괄적으로 4박5일이다. 물론 희망하면 그 전에라도 출소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높은 벽도 감시탑도 철조망도 없다. 귀띔하거니와 교도관도 없다.

그렇다. 이곳은 교도소가 아니라 교도소를 표방한 명상센터다. 이름하여 ‘내 안의 감옥’이다. 초대 소장은 전직 검사인 권용석씨. 현재 법무법인 아주대륙의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인데, 소장 직무에 전념하기 위해 휴직을 했다.

“희한한 게 몸인 것 같아요.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이고 관성이나 습관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마음도 이리저리 끌려다니죠.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잡으려면 몸을 먼저 가두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저를 위해서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다가 혹시 저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죄 안 짓고도 갈 수 있는 교도소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독특한 명상법을 착안하기는 10여년 전 지방에서 검사로 있을 때. 1주일에 100시간씩 일하는 패턴이 몇 달 반복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느 날 밤 숙소에 혼자 있다가 출혈 위궤양으로 밤새도록 복통에 시달렸다. ‘이대로 죽는 거 아닌가. 이대로 죽으면 내 인생은 뭐지?’ 아침이면 출근해서 똑같은 일을 해야 하는데, 교도소 독방에 일주일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2년 검사직을 그만두고 법무법인 변호사가 됐다. “로펌에서는 하고픈 사건을 못 해요. 돈 되는 것을 해야 하죠. 힘세고 가진 자를 위한 변호를 하기 십상입니다. 때로는 객관적 진실과 거리가 있는 판결을 끌어내는 일도 있어요. 죄를 덮어주는 대가로 선임료를 받는 느낌이 들 때조차 있어요. 21년 동안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정의를 세우겠다는 애초의 꿈에서 멀어진 상황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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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공장 권용석·노지향씨 부부.


속내를 들여다보면 겸사와 달리 그는 검사 때부터 동료들과 썩 달랐다. 인천지검 재직 때 검찰청 수사관, 파견 경찰, 출입 기자, 국세청 직원 등 중심으로 ‘사람사랑’ 모임을 만들어 결식아동과 조손가정 돕기 활동을 펴고, 제주지검 재직 때 전 직원이 함께하는 ‘푸른회’를 만들어 제주보육원 원생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결국 2009년 말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행복공장’을 세웠다. 행복한 삶은 나눔과 성찰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는 지론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3년 동안 영등포교도소 재소자, 부천 외국인 노동자, 평택 기지촌 할머니 등을 위한 연극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천안 외국인 전용교도소에 도서를 지원하였으며 캄보디아에서는 주택개량 사업을 지원하고, 도시빈민가정 어린이 방과후 학교를 운영해왔다. 모두 사회적 차별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일반사회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다.

이런 활동은 사실상 그의 반려 노지향씨의 몫이었다. 노씨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해’를 운영하면서 치료연극을 꾸준해 해오다 행복공장으로 갈아탔을 뿐이다. 권 변호사는 행복공장의 물주이자 후원자를 끌어오는 창구 역할을 하다가 감옥명상이 구체화하면서 비로소 제 몫을 찾았다. 그사이에 감옥명상 파일럿 프로그램을 세 차례 돌리며 심화시켰고 작년 8월에는 ‘내 안의 감옥’을 짓기 시작했다.

“감옥명상은 감옥 형태의 독방에 자발적으로 감금돼 일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함으로써 내면 성찰을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일단 입소하면 방을 배정받고 번호와 이름표가 달린 옷과 침구를 받는다. 집체교육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끼친 과오와 알게 모르게 이웃과 사회에 다하지 못한 책무 등을 깨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예수성심전교수도회 황지연 신부가 상처정화 수련법을 가르칠 것이라고 권 소장은 말했다.


4박5일 자진입소
자신을 돌아보는 수련법 교육
피곤한 사람은
잠만 자고 가도 환영


정화수련은 가부좌를 틀고 깊은 호흡을 하면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몸 밖으로 내던지는 식으로 이뤄진다. 즉, 어려서 받은 상처를 떠올리고 나서 그 생각이 나한테서 떠나가라는 의미로 “가” 혹은 “가라”고 외친다. 자신이 깊이 잡혀 있는 부정적인 정서, 예컨대 슬픔, 한, 우울, 불안, 두려움, 근심, 걱정, 공포, 짜증 등을 느끼고 나에게서 떠나가라는 의미로 “가” 또는 “가라”를 외친다. 그렇게 정신을 정화한 뒤에 명상에 잠긴다. 하루 세 차례 이상 반복하면 마음이 비워지고 그 빈자리는 사랑과 평화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독방에 들어가서는 기억정화 수련법으로든, 기왕에 알고 있는 자신만의 방법으로든 명상을 한다. 수면이 부족했던 사람은 수감 기간 내내 잠을 자도 무방하다.

이와 함께 모의법정을 만들어 스스로에 대한 공소장과 판결문 쓰기를 통해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고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감옥명상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김아무개씨는 “빈방, 할 일 없음, 버리고 또 버리기는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나를 회복시켰습니다. 생명력을 느끼고 아무 이유 없이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뛰어오르고 싶은, 나만 보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이 느껴지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고 말했다.

권 소장은 ‘내 안의 감옥’이 감옥 체험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밖으로만 향하는 우리의 눈을 안으로 돌려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서 교도소나 교도행정을 희화화한다는 시선을 경계했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569951.html#csidxb32d6756abd4c58bb1847b2b4d8d2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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