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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하루 [축하인사] '시즌1'을 마치며... 순례의 길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인간들’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시즌1'을 마치며
백영서 교수님이 출소파티에서 선물해 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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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길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인간들’
             - 백영서(연세대 문과대 학장)
   
 오늘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마지막 프로그램을 마치고 출소하신 여러분께 축하인사를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인사드리면서도 저는 좀 민망합니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 추진위원의 한 사람이지만 사실 저는 아직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옥을 참 싫어합니다. 1970년대 초 갓 20대에 들어선 나이에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복공장의 제안을 줄곧 피하다가 오늘 인사말 하러 오게 되자 하는 수없이 오전에 한 시간 속성 체험을 했습니다. 정좌를 하고 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맞은편 산이 ‘움직이는’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놀라서 좀더 자세히 바라보니 나무들이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산이 살아 움직이는 듯 보인 것입니다. 그 체험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무더운 여름 서울교도소 독방 창을 통해 떡갈나무의 잎들이 미풍에 흔들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던 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래 전의 감옥 체험과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은 나의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제 오늘의 이틀간 체험으로 각자 나름의 성찰의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행복공장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순례의 길’에 나선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새로운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 신성한 힘을 가진 것으로 믿는 장소를 찾아가는데, 이게 바로 순례이지요. 본래 순례는 ‘이상적인 것’과 접속하게 해주는 그 장소의 가치관에 나를 맞추는 것이기에 행동이나 언어, 음식 등에서 제한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관광상품화된 다양한 순례 길은 참여자의 소비욕망을 관철 시킨다는 점에서 여러분의 이틀간의 순례 길과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행복공장의 프로그램이 순례인 또다른 이유는, 일상의 삶이랄까 현재와 잠시나마 결별한 길에서 경험하고 들은 이야기의 기록, 성찰의 기억,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들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변화된 자기 모습의 증거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이 프로그램을 참여한 분들이 남긴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와 행복공장 홈피에 실린) 기록을 흥미롭게 훑어보는 기회를 누렸습니다.
 
 가장 공통적인 첫 체험은 ‘멍때리기’이더군요. 사실 이것이야말로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방법이 아닌가요. 그리고는 밀폐된 독방 안에서 감옥 밖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이 역설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쁜 일상에서 ‘시간 빈곤’에 시달리다가 문득 시간의 풍요로움을 깨닫습니다. 한 젊은 참여자는 “내가 흘려보내고 있던 순간순간이 이렇게 길게 쓰일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를 새삼 느꼈다. 정말 소중하게, 의미있게 쓸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는데, 흘러간 시간들이 아까웠고, 앞으로의 시간들이 귀해졌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떤 분들은 삶의 변곡점에 대해 성찰하기도 합니다. 가장 행복했던 때, 가장 불행했던 때를 깊이 돌아봅니다. 그중 제가 특히 가슴 뭉클하게 느낀 것은, ‘80세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성찰의 성과는 무엇일까요. 어떤 분은 “나를 행복하지 못하게 막는 내 안의 감옥은 무엇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죄책감과 분노’를 ‘답’으로 찾아냅니다. 그러면서 “이제 나는 서슴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기록합니다. 이 대목을 대할 때 참으로 부럽더군요.
 
 그분의 체험에 비하면, 대부분의 분들은 ‘집으로 돌아온 이후’ 각자의 생활에 있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혹 느끼게 되지 않을는지요. 그런데 그렇게 말한 분도 “지속적으로 꿈틀대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분명히 내 속에는 무엇인가가 생겨났다”고 증언합니다. 그것은 “깜깜한 상자 속의 한 줄기 빛” 같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저는 “우연히 이 곳에 대한 소개글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보자마자 신청했다”는 분이 남긴 기록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그분은 “나는 요즘 '자아를 찾아 떠나라'는 사람들처럼 현실을 버리고 떠날 용기는 없다. 그렇다고 현실을 누구보다 잘 살아낼 그릇도 가지지 못했다. 24시간 동안 갇혀있는 기회를 통해 그 둘 다를 지킬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밝힙니다. 
 
 사실, ‘독방 24시간’ 프로그램이든, 요즈음 유행하는 명상이나 요가나 마음 훈련 등을 통해 새로운 자아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시적으로 맛본 수행력은 완성될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연결과 지원이 요청됩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개인적 수행이 자칫하면 사회적 폐해로부터 무관심하거나 거리를 두는 삶의 태도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순례의 길’에서 형성된 새로운 자아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공공적 심성 또는 사회적 영성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끝으로, 저는 오늘 오후 출소자 여러분들을 순례의 길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인간’이라고 이름 붙여 드리고 싶습니다. 순례하는 인간상이 대표하는 아름다움의 가치가 무엇인지는 저 자신 좀 더 탐구해볼 과제입니다만, 이 자리에서는 오감을 통해 음미하는 미에 대해 강조하고 싶습니다. 21세기 들어 시각만이 아니라 오감을 동원한 종합적 사고를 수행하는 경험이 점점 더 주목되고 있습니다. 몸으로 생각하기가 ‘알기’의 객관적인 방법과 주관적인 방법을 결합하는 창조적 사고의 핵심으로 중시됩니다. 저는 오늘 오후 여러분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다함께 놀이’ 활동을 즐겼습니다. 아마 제가 최고령 참여자가 아닐까 싶은데 저로서는 근래 좀처럼 해본 적이 없는 체험입니다. 특히 두 편으로 나눠 깍지 낀 손바닥에 고인 물을 릴레이로 운반하는 놀이를 하면서 처음에는 이기겠다는 생각에 정신없다가 점차 서로 연결된 손의 촉감을 느꼈는데, 그 감각의 기억은 오래 제 몸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당일 현장에서는 유쾌하고 활기찬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까 망설여져 준비했음에도 읽어드리지 못한 윤동주 시인의 시 한편 소개합니다. 올해 마침 그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한데, 저는 그를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기기에 여러분에게 출소 선물로 알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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