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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강원도민일보][사각지대 놓인 강원 고립·은둔청년] 14. 고립을 치유로 바꾸는 곳 (홍천 ‘행복공장’)

홍천의 한적한 산자락. 교도소 독방을 닮은 작은 방들이 있다. 문을 닫는 순간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다. 하지만 이곳의 고립은 단절이 아닌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기 위한 ‘멈춤’이다. 청년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세상과 연결될 힘을 찾는 곳,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을 방문했다.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성찰공간 빈숲) 수련동 전경.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성찰공간 빈숲) 수련동 전경. 

■ 내 안의 감옥…‘멈춤’에서 시작된 행복공장

행복공장은 2009년 고(故) 권용석 초대 이사장이 만들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검사로 10년, 변호사로 15년 살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일과 인간관계에 치여 살아가던 어느 날 교도소 독방을 떠올렸다. ‘누군가 나를 강제로 멈춰줄 수 있는 공간에서 일주일만이라도 쉬고 싶다.’ 그 생각이 행복공장의 시작이 됐다.

홍천수련원의 건물 이름도 ‘내 안의 감옥’이다. 방마다 배식구가 있고 밖에서 문을 잠글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자신을 가둠으로써 오히려 자유를 느끼고,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이다.

권 이사장은 유고집‘꽃 지기 전에’ 에서 “행복하지 않은 내가 너를 물들일 것 같아서. 행복하지 않은 너에게 내가 물들 것 같아서. 행복으로 물들이는 너와 내가 되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도 행복공장을 합니다”라고 남겼다.

수년 전 세상을 떠난 권 이사장의 뜻은 아내 노지향 원장과 아들 권예철 부원장이 이어가고 있다. 행복공장은 ‘성찰과 나눔을 통해 여는 행복한 세상’을 내걸고 개인의 쉼과 회복을 사회적 나눔으로 연결하고 있다.

홍천수련원 수련동의 1인실. 
홍천수련원 수련동의 1인실. 

■ 행복공장이 놓는 회복의 디딤돌

행복공장이 고립·은둔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이 문제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다.

권예철 부원장은 “고립·은둔을 경험하는 청년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스스로 선택한 고립은 ‘치유’가 될 수 있지만 사회적 압박으로 인한 고립은 ‘고통’이 된다. 이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행복공장은 예술치유캠프와 가족치유캠프, 즉흥 치유연극, 자립성장 프로젝트 등을 운영한다. 바리스타·목공 등 직업교육과 관계 형성, 심리치유를 결합하고 고립·은둔 경험 청년들이 직접 커피차를 운영하는 일 경험도 제공한다.

상담부터 공동생활, 예술치유, 직업교육, 일 경험까지 연결한 통합회복 프로그램 ‘움직이는 섬’도 운영 중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청년들의 사연은 복잡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폭력과 학교 내 따돌림, 반복된 실패와 좌절 끝에 세상과 관계를 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권 부원장은 “그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게으르거나 도태된 사람으로 바라보지만 한명 한명의 이야기는 충분히 은둔의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못했던 청년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연기하고, 아버지와 틀어졌던 청년이 관계를 회복하고, 죽고 싶다던 청년이 “삶이 참 재미있다”고 말하는 변화도 있었다. 행복공장을 만나면서다.

2023년 7월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에서 진행된 은둔고립청년 가족 치유캠프 2차 참가자 단체사진. 
2023년 7월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에서 진행된 은둔고립청년 가족 치유캠프 2차 참가자 단체사진. 

■ 장기 회복에 단기 지원…지속 가능한 기반 필요

하지만 이 같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현장의 기반은 불안정하다. 행복공장의 연극치유와 홍천수련원 프로그램에는 전문 인력과 시설 유지비가 필요하지만,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저비용 사업이 많아 외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원 자체도 단기적이다. 이렇다보니 우수 사업으로 선정되고도 이듬해 지원이 끊긴 사례도 있다. 권 부원장은 “은둔 청년의 치유 과정은 비선형적이며 장기적”이라며 “1년 단위 공모사업은 고용 불안정과 사업의 단절, 사례 증발과 참가자의 좌절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행복공장은 최소 3년 이상의 다년도 지원과 함께 취업률 같은 단기 결과보다 상담과 관계 형성 등 회복 과정 자체를 성과로 인정하는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특히 고립·은둔 청년의 회복이 일회성 사업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022년 4월 행복공장이 주최한 고립청년과 함께하는 즉흥치유연극 ‘나의 이야기극장’
2022년 4월 행복공장이 주최한 고립청년과 함께하는 즉흥치유연극 ‘나의 이야기극장’

■ 청년이 발 디딜 수 있는 ‘세상의 온도’ 높여야

행복공장은 고립·은둔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교정해야 할 일탈로만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 부원장은 “방구석이 좋을 리가 없는데도 머무는 것은 문밖의 세상이 더 공포스럽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성장에 앞서 상처를 회복하고, 세상이 안심하고 나와도 되는 공간임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복공장 노지향 원장과 권예철 부원장
행복공장 노지향 원장과 권예철 부원장

행복공장이 부모교육에서 강조하는 것도 ‘기다림의 철학’이다. 청년을 억지로 방 밖으로 끌어내기보다 스스로 다시 사람과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권 부원장은 “재고립률이 50%를 상회하는 현실은 청년을 방 밖으로 끌어내는 것보다 그들이 발을 내디딜 세상의 온도를 1도라도 높이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청년들이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고, 안심하고 나올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이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최현정 기자 hjchoi@kado.net

출처 : https://www.kado.net/news/curationView.html?idxno=2070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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