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ribution news [소년원학교]나의 인생
- happitory
- 451
- 0
두 명의 아이들이 오지 않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싸움에 휘말려서 징계방에 갈 거 같다고 한다.
연극반 규칙상, 징계방에 가면
연극도 못 올리고 중도에 하차하게 된다.
연극은 둘 째 치고,
얼마나 다쳤는지..
어쩌다 참지 못해 싸우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았으면 좋겠다.
혹시나 억울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야, 너거들~
우리 끝까지 가기로 했잖아.
그랄라면 징계방 가면 안 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지 마라 알았나?”
정겨운 사투리로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는
고봉중·고등학교 연극반 담당선생님.
하지만 선생님도 알 것이다.
그러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의 인생그래프를 보면
대개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사고를 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재판에 넘겨져
이곳 소년원으로 오게 된다.
아이들에 따라 그 친구를
“진정한 친구”라 부르기도 하고
“나쁜 친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그 시절을
나의 화려한 시절이라 회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후회해서 돌이킬 수 있다면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시점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나쁜 친구”
혹은 “진정한 친구” 였다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모두가 그 친구를 통해서
물들었다는 아이들뿐이다.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그 친구를 만난다면
물어 보고 싶다.
“너는 어떻게
나쁜 친구 혹은 진정한 친구가 된 거니?”
아마도 어른 때문이 아닐까?
어른들의 술 마시는 모습,
담배 피는 모습, 싸우는 모습들이
아이들에게 노출되어
모방됐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심판할 권리가 있을까?
미안하다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다.
세 살 때, 교통사고로 장기가 파열되어
9개월 동안이나 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던 한 아이는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차라리 그 때 죽었어야 했는데,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죽었더라면
고통이라도 없었을 텐데”
나는 그 아이의 탁기가 사라지라고
있는 힘껏 등 어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하지만 현재의 삶이 불안한 아이는
아프지도 않은지 반응이 없다.
그저 그 생각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 했다.
“너는 이제 우리에게 소중한 아이다.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마라.”
그 아이가 나의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어른들이 싸움대신 춤을 추고,
술, 담배, 도박 대신 놀이를 했다면,
우리 아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2017.03.21
Facebook Twitter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