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불교신문] 잘 살고 있는 걸까…스스로 가두고 온전한 자유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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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 퇴임 후 첫 행보가 백담사 무문관 입방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의 무문관 체험 요청이 쇄도한다. 2평이 채 안되는 독방에서 고독과 마주한 채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는 독방 체험도 인기다.. 사진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사단법인 행복공장 ‘내 안의 감옥’. 사진=불광 최배문 작가 제공. |
행복공장 ‘내 안의 감옥’
감포도량 무일선원 비롯
갑사 무문관 템플스테이
백담사 프로그램 개설도
문 없는 수행처, 무문관(無門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달 8년 임기를 마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퇴임 후 첫 행보로 백담사 무문관에 방부를 들이며 한차례 화제를 모은 데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반성과 변화의 기회를 찾고자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밥벌이에 허덕이며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정작 내면을 살피는 일에는 소홀해 왔던 현대인에게 ‘무문관’은 수행처이자 또 다른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신비한 경험으로 다가오기 마련.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달,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삶의 어디쯤 왔는지, 지금 가고 있는 이 방향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또박또박 물어봐야 할 시기다.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온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일반인을 위한 무문관 수행처를 소개한다.
최근 10~40대 젊은 층에게 가장 핫한 곳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사단법인 행복공장 ‘내 안의 감옥’이다. 프로그램 이름이 ‘내 안의 감옥’인 만큼 참가자들은 짧게는 24시간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1.5평짜리 방에서 자발적 수감 생활을 한다. 프로그램마다 구체적 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수감 번호를 부여 받고 푸른 수인복으로 갈아 입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휴대폰, 노트북 등 전자기기는 물론 책 등 개인 물품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간단한 침구와 필기구만이 제공되고 식사 때가 되면 문 아래 배식구를 통해 고구마와 바나나를 갈아 넣은 셰이크 등 간단한 식사가 제공된다.
28개 독방을 갖춘 이 명상 센터는 2013년 문을 열었다. 검사 출신 변호사 권용석 이사장과 그의 아내 극단 ‘해’ 대표 노지향 상임이사가 함께 지었다. 20여 년 전 제주 지검 담당 검사로 일하던 권 이사장이 업무에 지쳐 오랫동안 알고 지낸 교도소장에게 일주일 동안 수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권 이사장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작은 방에 혼자 머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항상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현대인들이 한번쯤 삶에서 벗어나 이 작은 방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마주하길, 또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내 안의 감옥’ 프로그램은 ‘독방24시간’을 비롯해 ‘금강스님의 무문관’, ‘프리존 스테이’, ‘노지향의 유쾌한 감옥’, ‘황 신부의 내안의 감옥’ 등 성별, 종교, 나이 상관없이 참가자 기호에 맞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수감 생활이 가장 긴 프로그램은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 직접 지도하는 무문관 체험 프로그램이다. 미황사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로 금강스님과 인연을 맺은 권용석·노지향 부부가 일반인들에게도 불교의 수행방편을 알리고자 지난 2014년 문을 열었다.
1년에 단 두번, 여름과 겨울에 진행한다. 오는 2018년에는 1월28일부터 2월3일까지 진행되는데 7박8일 동안 금강스님이 직접 간화선 수행 책자 ‘무문관’에 대해 설한다. 108배, 오후불식 등 참선위주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다.
오랜 기간 참선수행에 집중해온 이들을 위한 수행처도 있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감포도량무일선원에서는 짧게는 2박3일에서 길게는 3년까지 일반인들의 무문관 수행이 가능하다. 단 근기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양이 다르기 때문에 입방 전 스님과 면담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수행기간을 정하고 약 4평 채 안되는 방에 들어가면 밖에서 문이 ‘철컥’ 잠긴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하루 단 1번. 밥, 국, 반찬, 과일, 우유 등이 담긴 보온도시락이 공양구를 통해 들어올 때 만이다. 혹 몸이 아파 약이 필요하거나 기력이 떨어져 중단을 원할 땐 말 대신 쪽지로만 전한다. 한 번에 먹든, 세 끼에 나눠먹든 식사는 도시락통에 담길 정도로만 단 한번 제공되며, 출재가 상관없이 방을 구분하지 않고 쓴다는 점에서 다른 곳과 차이가 있다.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무량심 보살은 “감포도량 무문관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등 육근의 문을 닫고 오로지 진정한 자기 자신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수행 초보자 보다 참선수행에 매진해온 분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현재도 1년 반 이상 두문불출하고 있는 보살이 있을 정도로 근기 있는 재가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무문관 이름을 달고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도 있다. 공주 갑사는 매월 셋째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박3일 동안 '온전한 나와의 만남, 무문관'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인원은 소수 8명 이내로 제한되며 까닥하다간 몸과 정신이 모두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방부를 들이기 전 스님과 면담을 거쳐야만 입방이 가능하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 퇴임 후 첫 행보가 무문관 수행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담사에는 최근 무문관 체험 요청이 물밀 듯 밀려오고 있다. 백담사 템플스테이 담당자는 “이전에도 종종 있어왔지만 최근 들어 무문관에 들어와 참선수행을 해보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졌다”며 “무문관은 스스로를 몰아치는 극한의 수행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본인의 근기에 맞게 무문관에서 참선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중에 있다”고 했다.
법정스님은 독일 사상가 마르틴 부버의 말을 인용해 다음을 재차 물었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세파에 부서질세라 납작 엎드린 채 방황할수록, 속도를 멈추고 또박또박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문 없는 수행처 무문관에서 지난 날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백담사 무문관. |
■ 무문관 유래 무문관(無門關)은 본래 남송시대 무문혜개(無門慧開) 스님이 지은 책 이름이다. 깨달음 경지인 무(無)를 표현하고, 무자(無字) 화두를 탐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수좌들이 바깥 출입을 금하고 수행에만 몰두하는 정진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단어만 살피면 ‘문 없는(無門)’ 수행이지만 화두 참구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데 근본을 둔다. 치열한 정진으로 ‘무문’을 지나 ‘개문(開門)’의 경지에 도달해 궁극적 깨달음을 성취하려는 원력이 숨어있는 것이다. 사실 문(門)의 ‘위치’를 어디로 하느냐에 따라 무문관 범위와 종류는 달라질 수 있다. 동학사와 천장암에서 문을 폐(閉)하고 정진해 깨달음을 성취한 경허스님, 오대산을 떠나지 않고 수십년간 정진 또 정진했던 한암스님, 10년간 팔공산을 나서지 않은 성철스님 동구불출(洞口不出)도 무문관 수행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대중과 격리된 공간에서 각자 방문을 닫아걸고 화두 참구에 전념하는 것을 무문관 수행이라고도 한다. 밖에서 자물쇠를 채우면, 공양은 외호대중이 공양구(供養口)로 불리는 작은 문을 통해 전달한다. 이때도 대화는 금지되며 불가피할 경우 필담(筆談)으로 소통이 이뤄진다. ‘나’를 제외한 외부와의 소통을 모두 단절하고, 일체 말을 않는 묵언(言)이 무문관 정진의 기본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나 자신과의 싸움, 무문관 수행이 불교에서 가장 치열하고 고독한 수행법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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