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정의 사람,이야기] 성찰공간 ‘내 안의 감옥’ 짓는 행복공장 권용석 이사장


좀 뜬금없어 보이겠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행복하십니까?” 이제 막 사랑에 빠졌거나(불 같은 사랑도 유통기간은 길어야 900일이란다!), 대학 혹은 직장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 경우(그 기쁨의 시효는 훨씬 더 짧다!)가 아니라면 선뜻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내친 김에 더 묻자. “왜 행복하지 않나요?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요?” 아마도 가장 많은 답변은 “글쎄요…”가 아닐까 싶다.


권용석(50) 변호사는 10여 년 전 검사 시절부터 이 물음들을 화두처럼 붙들고 씨름했다. 오랜 번민 끝에 이른 생각. “행복이란 어떤 조건들이 채워지는 순간 완성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며 비우고 나누는 삶을 통해 쌓아가는 것이다.” 이 소박한 깨달음은 2009년 설립한 사단법인 행복공장의 모토가 됐다. 그와 아내인 연극인 노지향(52)씨가 각각 이사장, 상임이사를 맡은 행복공장에는 호인수 김일회 김영욱 신부, 금강 스님, 김은녕 목사, 김진한 황선기 변호사, 김석만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영화배우 박중훈씨 등이 참여하고 있다. 


행복공장이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으로 삼는 성찰 프로그램은 이름부터 독특하다. ‘내 안의 감옥’. 감옥을 본뜬 공간에 스스로를 가둬 온전히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을 옥죄는 크고 작은 마음의 매듭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이다. 세상과 단절된 채 모든 자유를 속박당하지만 그래서 때로는 웅숭깊은 사색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감옥의 역설을 활용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강원 홍천군에 짓고 있는 ‘내 안의 감옥’이 5월이면 문을 연다. 권 이사장은 올해 이 프로젝트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법무법인 대륙아주)을 휴직했다. 지난 22일 서울 관악구 남현동 행복공장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언젠가는 변호사 일 그만두고 행복공장에서 월급 받고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성찰’이라니 신선하면서도 엉뚱한데, 실제 감옥에 가본 적이 있나요?


검사 시절 인권침해 여부 조사를 위해 방문했지만, 죄 짓고 가본 적이야 없죠. 아, 대학 때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 보낸 일은 있네요. 시비에 휘말려 기물파손 혐의로.(웃음) 90년대 말 제주지검에서 일할 때였어요. 새벽 퇴근을 밥 먹듯 하는 생활에 몸도 정신도 피폐해지자, 단 며칠이라도 교도소 독방에서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처음엔 그저 술 담배나 일, 사람관계에서 해방돼 편히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독방에 있다 보면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다른 길은 없는지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겠다 싶었죠.


-하고 많은 공간들 가운데, 왜 하필 감옥인가요?


어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관계든 일이든 욕심이 집착을 낳고 구속으로 이어지는…. 저희가 지으려는 감옥은 그런 세상의 속박들에서 놓여나 온전히 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통혁당 사건으로 20년 옥살이를 한 신영복 선생의 에 이런 말이 나와요. “제가 수형 생활을 통하여 새로이 지니게 된 습관이 있다면 … 동일한 문제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거듭 생각하는 버릇입니다. … 대개는 면벽이나 불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저 돌이켜 보는 것에 불과하지만 저는 이러한 것에 의하여 일련의 새로운 판단을 가지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4개월간 구치소에서 보낸 경험이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바깥에서 누리기 어려운 영혼의 자유를 만끽했다. 생각이 바뀌자 세상이 달리 보이고 마음이 열리자 우주가 밀려 왔다”고 했지요. 그런 경지에야 이르기 어렵겠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몸을 가둠으로써 습관적 사고, 관성적 삶에서 잠시 멈추어 나를 돌아보는 기회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계획을 밝혔을 때 주위 분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열 명 중 한두 명은 열광적 지지, 서너 명은 그거 괜찮겠다는 정도, 나머지는 별 쓸데없는 생각 다 한다는 반응이었죠. 개중에는 감옥 만들면 그 앞에서 두부 팔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웃음) 다행히 아내는 재미있겠다, 한번 해보자고 했어요. 우리끼리는 이렇게 주장하죠. 죄 안 짓고 제 발로 가는 세계 최초의 감옥이라고.


-땅은 기증을 받았나요? 건립 비용도 만만찮을 텐데 어떻게 마련했죠?


땅은 2004년에 제가 샀어요. 1만평쯤 생각했는데 땅값이 많이 올라 2,500평밖에 안돼요. 건립 비용 20억원 중 10억원은 저희 부부가 부담하고, 5억원은 행복공장 후원회원인 대륙아주 동료들과 형제, 장모님, 친구들이 보탰어요. 말은 “내가 못 살아” 하시면서도 다들 흔쾌히 응해 주셔 고맙고 죄송하죠. 그래도 아직 5억원이 부족해요. 있는 사람들한테는 천만 원, 이천만 원이 별 거 아닐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모금하면서 섭섭할 때도 있고, 제가 하는 일에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은데 제 욕심만 부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도 닦고 있습니다. 술 취했을 땐 5억원 아니라 그 이상도 모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다음 날 술 깨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져요.(웃음)


홍천군 남면 용수리에 짓고 있는 ‘내 안의 감옥’은 관리동, 강당동, 수감동 등 3개 건물로 이뤄져 있다. 수감동 2개 층에는 5.76㎡(1.7평)짜리 독방 32개, 11.02㎡(3.3평)짜리 가족실 2개가 들어선다. 각 방에는 화장실과 세면대만 있다. 실제 감옥처럼 문에는 감시창과 배식구가 달려있고, 교도관이 열어줘야 나갈 수 있다. 밥은 식당에 모여 먹지만, 본인이 원하면 배식구를 통해 방안에 넣어주기도 한다.


4박5일 수감 생활의 첫 관문은 공소장 작성. 내 마음을 괴롭힌 죄, 몸을 혹사해 건강을 해친 죄,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한 죄,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불의를 보고도 침묵한 죄 등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주고 수감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아 공소 제기를 하게 한다. 마지막 절차인 판결 역시 수감자가 내린다. 수감 중 하루 일과는 예수성심전교수도회 황지연 신부의 지도로 과거의 기억과 상처들을 떠올려 하나하나 떨쳐내게 하는 수련과 개별 상담, 강의, 교도소 노역에 해당하는 텃밭 농사 등으로 짜여진다. 하지만 참가 여부는 수감자 스스로 결정한다. “독방에 갇혀 지낸다는 것이 여느 명상ㆍ성찰 프로그램들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이지만, 이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모두 자율에 맡겨요. 4박5일 내내 방안에 틀어박혀 잠만 자다 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초반에 템플 스테이에 빗대 ‘프리즌 스테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을 ‘내 안의 감옥’으로 바꿨어요. 감옥 생활을 ‘체험’하는 게 아니라, ‘내면 성찰’이 주 목적임을 분명히 하려는 거죠. 그 동안 스스로 짓고 키워 온 마음 감옥에서,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걸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뜻은 좋은데, 자칫 감옥을 희화화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감옥에 갇혀 고통 받는 이들 눈에는 배부른 자들의 사치로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많이 조심스러워요. 그런 지적 받지 않게 더 다듬고 잘 운영해야죠. 학교폭력 피해자, 가해자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 게임중독이나 비행 청소년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등도 운영하려고 해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어느 사회보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나름대로 앞서 나가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가진 사람들이 과연 진정으로 행복할까? 모르겠어요. 그들이 여기서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은 물론 더불어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에요. 


행복공장이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으로 삼는 성찰 프로그램은 이름부터 독특하다. ‘내 안의 감옥’. 감옥을 본뜬 공간에 스스로를 가둬 온전히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을 옥죄는 크고 작은 마음의 매듭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이다. 세상과 단절된 채 모든 자유를 속박당하지만 그래서 때로는 웅숭깊은 사색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감옥의 역설을 활용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강원 홍천군에 짓고 있는 ‘내 안의 감옥’이 5월이면 문을 연다. 권 이사장은 올해 이 프로젝트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법무법인 대륙아주)을 휴직했다. 지난 22일 서울 관악구 남현동 행복공장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언젠가는 변호사 일 그만두고 행복공장에서 월급 받고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성찰’이라니 신선하면서도 엉뚱한데, 실제 감옥에 가본 적이 있나요?


검사 시절 인권침해 여부 조사를 위해 방문했지만, 죄 짓고 가본 적이야 없죠. 아, 대학 때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 보낸 일은 있네요. 시비에 휘말려 기물파손 혐의로.(웃음) 90년대 말 제주지검에서 일할 때였어요. 새벽 퇴근을 밥 먹듯 하는 생활에 몸도 정신도 피폐해지자, 단 며칠이라도 교도소 독방에서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처음엔 그저 술 담배나 일, 사람관계에서 해방돼 편히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독방에 있다 보면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다른 길은 없는지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겠다 싶었죠.


-하고 많은 공간들 가운데, 왜 하필 감옥인가요?


어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관계든 일이든 욕심이 집착을 낳고 구속으로 이어지는…. 저희가 지으려는 감옥은 그런 세상의 속박들에서 놓여나 온전히 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통혁당 사건으로 20년 옥살이를 한 신영복 선생의 에 이런 말이 나와요. “제가 수형 생활을 통하여 새로이 지니게 된 습관이 있다면 … 동일한 문제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거듭 생각하는 버릇입니다. … 대개는 면벽이나 불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저 돌이켜 보는 것에 불과하지만 저는 이러한 것에 의하여 일련의 새로운 판단을 가지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4개월간 구치소에서 보낸 경험이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바깥에서 누리기 어려운 영혼의 자유를 만끽했다. 생각이 바뀌자 세상이 달리 보이고 마음이 열리자 우주가 밀려 왔다”고 했지요. 그런 경지에야 이르기 어렵겠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몸을 가둠으로써 습관적 사고, 관성적 삶에서 잠시 멈추어 나를 돌아보는 기회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계획을 밝혔을 때 주위 분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열 명 중 한두 명은 열광적 지지, 서너 명은 그거 괜찮겠다는 정도, 나머지는 별 쓸데없는 생각 다 한다는 반응이었죠. 개중에는 감옥 만들면 그 앞에서 두부 팔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웃음) 다행히 아내는 재미있겠다, 한번 해보자고 했어요. 우리끼리는 이렇게 주장하죠. 죄 안 짓고 제 발로 가는 세계 최초의 감옥이라고.


-땅은 기증을 받았나요? 건립 비용도 만만찮을 텐데 어떻게 마련했죠?


땅은 2004년에 제가 샀어요. 1만평쯤 생각했는데 땅값이 많이 올라 2,500평밖에 안돼요. 건립 비용 20억원 중 10억원은 저희 부부가 부담하고, 5억원은 행복공장 후원회원인 대륙아주 동료들과 형제, 장모님, 친구들이 보탰어요. 말은 “내가 못 살아” 하시면서도 다들 흔쾌히 응해 주셔 고맙고 죄송하죠. 그래도 아직 5억원이 부족해요. 있는 사람들한테는 천만 원, 이천만 원이 별 거 아닐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모금하면서 섭섭할 때도 있고, 제가 하는 일에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은데 제 욕심만 부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도 닦고 있습니다. 술 취했을 땐 5억원 아니라 그 이상도 모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다음 날 술 깨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져요.(웃음)


홍천군 남면 용수리에 짓고 있는 ‘내 안의 감옥’은 관리동, 강당동, 수감동 등 3개 건물로 이뤄져 있다. 수감동 2개 층에는 5.76㎡(1.7평)짜리 독방 32개, 11.02㎡(3.3평)짜리 가족실 2개가 들어선다. 각 방에는 화장실과 세면대만 있다. 실제 감옥처럼 문에는 감시창과 배식구가 달려있고, 교도관이 열어줘야 나갈 수 있다. 밥은 식당에 모여 먹지만, 본인이 원하면 배식구를 통해 방안에 넣어주기도 한다.


4박5일 수감 생활의 첫 관문은 공소장 작성. 내 마음을 괴롭힌 죄, 몸을 혹사해 건강을 해친 죄,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한 죄,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불의를 보고도 침묵한 죄 등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주고 수감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아 공소 제기를 하게 한다. 마지막 절차인 판결 역시 수감자가 내린다. 수감 중 하루 일과는 예수성심전교수도회 황지연 신부의 지도로 과거의 기억과 상처들을 떠올려 하나하나 떨쳐내게 하는 수련과 개별 상담, 강의, 교도소 노역에 해당하는 텃밭 농사 등으로 짜여진다. 하지만 참가 여부는 수감자 스스로 결정한다. “독방에 갇혀 지낸다는 것이 여느 명상ㆍ성찰 프로그램들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이지만, 이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모두 자율에 맡겨요. 4박5일 내내 방안에 틀어박혀 잠만 자다 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초반에 템플 스테이에 빗대 ‘프리즌 스테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을 ‘내 안의 감옥’으로 바꿨어요. 감옥 생활을 ‘체험’하는 게 아니라, ‘내면 성찰’이 주 목적임을 분명히 하려는 거죠. 그 동안 스스로 짓고 키워 온 마음 감옥에서,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걸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뜻은 좋은데, 자칫 감옥을 희화화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감옥에 갇혀 고통 받는 이들 눈에는 배부른 자들의 사치로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많이 조심스러워요. 그런 지적 받지 않게 더 다듬고 잘 운영해야죠. 학교폭력 피해자, 가해자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 게임중독이나 비행 청소년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등도 운영하려고 해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어느 사회보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나름대로 앞서 나가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가진 사람들이 과연 진정으로 행복할까? 모르겠어요. 그들이 여기서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은 물론 더불어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에요. 


-5월 개소를 앞두고 예약 신청도 받고 있나요?

아직 신청은 받지 않는데, 문의는 많이 와요.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2박3일로 줄여 단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느냐는 요청도 오고. 관심들은 많은 것 같아요.


행복공장의 또 다른 축인 ‘나눔’은 권 이사장 부부가 오래 전부터 다양한 영역에서 펼쳐 온 활동이 밑거름이 됐다. 권 이사장은 인천지검에서 근무할 때 검찰 수사관, 출입 기자 등과 함께 ‘사람사랑’ 모임을 만들어 결식아동과 조손 가정을 도왔고, 제주지검 시절엔 ‘푸른회’를 결성해 보육원생들을 후원했다. 캄보디아에서 도시빈민 지원 활동을 하는 친구를 개인적으로 돕기도 했는데, 행복공장이 출범한 뒤엔 어엿한 ‘지구촌 나눔 사업’으로 자리잡았다. 현지 직원 3명을 두고 주택개량 사업, 빈민아동을 위한 방과후학교 활동 등을 펼치고 있으며, 최근엔 자원봉사자 한 명을 파견했다.


예술 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의 상처를 보듬는 일은, 브라질의 교육연극 대가 아우구스토 보알의 영향을 받아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해’를 이끌고 있는 노지향 이사의 몫이다. 2010년엔 영등포교도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치유연극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지난해에는 평택 기지촌 할머니들이 직접 출연해 자신들의 삶을 그린 연극 ‘숙자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베트남ㆍ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모임 ‘베캄교실’을 운영하며 참여연극 ‘우리 집에 왜 왔니’와 다큐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치유연극을 함께하는 동안 어느 누구보다도 가까워져 이후에도 만남을 지속할 수 있어요. 교도소 재소자 프慣瀏??참여한 14명 가운데 10명이 출소했는데 수시로 연락하고 분기별로 모임도 갖고 있어요. 징역 5~20년씩 받았던 분들이라 상처도 많고 재범의 유혹에 빠지기도 쉬운데, 누군가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겐 힘이 될 수 있어요. 행복공장 회원 중에 의사들도 몇 분 계신데, 부상 당한 이주 노동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기도 했어요.” 권 이사장은 쑥스러운 듯 어색한 미소를 띠면서도 평생 동지인 아내 자랑을 잊지 않았다. “제가 좀 불출(不出)인데, 치유연극 분야에선 제 처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나은 것 같아요. 기회 되면 꼭 보러 오세요. 정말 좋아요.”


-법조인으로서의 삶도 궁금합니다. 왜 검사가 됐고, 왜 그만뒀나요?


사법시험 볼 때는 변호사 할 생각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어서 판검사 하기는 꺼려졌죠. 인권변호사라고 구분 짓는 건 싫은데, 아무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인천지검에서 검사시보를 하면서 마음을 바꿨어요. 검사들은 되게 잘 살고 권력지향적인 줄 알았는데 안 그런 거예요.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 편에 서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극우단체에 의해 암살당한 그리스 정치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브 몽땅 주연의 영화 ‘Z’를 보면서 사회정의를 해치는 사람들 수사해서 법정에 세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6개월 정도 하니까 싫더라고요. 저랑 잘 맞지 않았어요. 범죄라고 하는 것들이 건강하지 않은 가정, 건강하지 않은 학교, 건강하지 않은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경우가 많잖아요. 이들을 잡아다 처벌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 회의가 들더라고요. 보람이 큰 것도 아니고 심신만 지쳐가니 떠나게 됐죠.


-2002년 변호사로 전업하면서 달리 결심한 것이 있나요?


특별히 없어요. 얼른 돈 벌어서 행복공장 같은 거 만들고 싶다는 생각 정도?(웃음)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법조인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잘 듣는 것’인데, 저는 잘 듣는 편이에요. 유능한 검사였는지는 잘 모르겠고, 변호사로선 꽤 잘 했던 것 같아요. 베트남 정부가 범죄인 인도청구를 한 베트남 반체제 인사 우웬 후 창씨에 대해 법원의 인도 불허 결정을 이끌어낸 것도 기억에 남고, 무죄 판결도 많이 받았어요.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었으니, 행복해지셨겠네요.


그렇진 않아요. 형사 전문이라 스트레스가 많아요. 잘못은 저 사람이 했는데 제가 대신 가서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매품 파는 흥부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보람도 있지만 피고인이 지는 부담감이 내 어깨에 고스란히 넘어오니 힘들고 지칠 때도 많습니다. 검사할 땐 변호사들 손쉽게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해보니 그렇지가 않아요. 로펌에 있다 보니 돈 되는 사건인지 안 따질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애초에 가졌던 정의감 같은 것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너무 엄살을 떨었나요?(웃음)


-요즘 사법불신이 심각합니다. 잠재돼있던 불만이 영화 ‘도가니’ ‘부러진 화살’을 계기로 폭발한 데 이어 법조인 비리 사건이 줄줄이 터지더니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논란이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습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아까 법조인의 덕목 중 하나가 잘 듣는 거라고 말씀 드렸는데, 수사나 판결에 대한 불신은 잘 못 듣는 것, 안 듣는 것에서 싹텄다고 봐요. 같은 결과라도 말을 충분히 들어줬다면 불신이 그만큼 줄 수 있죠. 두 번째 덕목이자 의무는 빚쟁이가 되지 않는 거예요. 요즘 대부분의 판검사들은 그렇지 않지만, 접대 받고 대우 받는 걸 당연시 하는 분들도 더러 있어요. 판검사는 사회적으로 떠받들어지는 직업이라 자기 성찰이 없으면 도덕성이 무뎌질 수 있어요. 자리를 탐해서도 안되죠. 판사 되고 검사 됐으면 그 자체로 출세한 거잖아요. 최선을 다해 일한 것으로 족해야죠. 그 연장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높은 자리에 오르면 좋은데, 자리 탐하는 마음부터 들면 좋은 판사, 좋은 검사가 절대 될 수 없어요. 이런 사람들이 인사권을 휘두르는 높은 자리에 앉는 건 법원과 검찰의 비극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본인에게도 비극이에요. 진짜 능력 있고 존경 받는 분들이 윗자리에 많이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법조의 권위를 찾을 수 있어요. 대다수 판검사들은 별 누리는 것도 없이 고생 하는데, 정치적 사건 하나 잘못 처리해서, 이상한 사람 하나 문제 돼서, 판검사들 전체가 매도 당하는 걸 보면 정말 안타까워요.


-1년 휴직 후엔 계속 로펌 변호사로 활동할 생각인가요?


그게 고민입니다. 예전부터 검사 10년 했으니, 변호사 10년 채우고 나선 하고 싶은 일 하고 살겠다고 했는데, 벌써 변호사 1년 초과예요.(웃음) 변호사 일 병행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내가 즐겁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에 한하여 하고 싶지만, 로펌에 있으면서 그러기는 쉽지 않죠.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도리도 아니고. 지금은 행복공장과 ‘내 안의 감옥’ 사업에 집중해야 하니, 고민은 차차 하렵니다.


선임기자 jaylee@hk.co.kr